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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덜트적 욕망의 레이어 

 - 이지현의 ‘Bon, 本, 본’ -

 

박은영(미술사가)

 

물질문명이 최고조에 달하고 정보화 사회로 급변하는 오늘날 인간의 욕망이 향하는 대상과 드러나는 양상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 기본적인 의식주처럼 삶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차적이고 잉여적인 것에 가치를 두고 그것을 추구한다. 욕망의 대상은 흔히 상품의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대량으로 생산, 유포되는 상품은 사람들을 공통의 욕망으로 몰아넣는다. 다수가 누리는 것을 나도 소유하는 동시에 나만의 특별한 것을 갖고 싶어 한다. 공통되면서도 차별화된 것을 추구하는 욕망이 특정 상품에 대한 수집 취미를 부추긴다.

 

이러한 욕망의 자취들은 최근의 ‘키덜트 문화’에서 단적으로 표출된다. 어른이지만 어린아이의 감성이나 행동을 추구하는 키덜트들은 인형이나 장난감처럼 아이들의 것에 집착하며 특정 제품의 수집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동심을 일깨우는 물건들을 통해 현실의 압박에서 벗어나 순수한 재미와 기쁨을 느끼며 긴장을 풀고 위로를 얻으려 한다. 그런데 키덜트들은 어린아이의 천진한 놀이나 취미를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점점 더 상품에 고착되는 소유의 욕망, 소비의 욕망을 드러낸다. 자본주의 시장이 편승해 키덜트를 겨냥한 상품을 계속 내놓고, 새로운 제품은 또다시 욕망을 자극한다.

 

이지현 작가는 현대인의 기억과 습관 속에 자리한 키덜트적 욕망의 대상들을 하나씩 끄집어낸다. 어느새 우리의 어린 시절 추억은 대자본이 배포한 코카콜라, 미키마우스, 아톰, 레고블록 같은 유명 상품으로 채워지고 있다. 한국적인 전통이나 고전은 기억과 일상에서 점점 아득해진다. 한국화를 전공하고 오랜 작품활동을 한 작가라고 해서 이러한 현실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래서 이지현의 작품에서 공통으로 가장 크고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미지는 바로 만화 주인공을 닮은 장난감 같은 캐릭터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는 ‘Bon(본)’이다. 사람을 닮은 얼굴에 미키마우스처럼 동그란 귀와 큰 눈을 가지고 있고 베어브릭과 유사한 팔다리를 지닌 귀여운 형상이다. 미키마우스는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이자 디즈니사의 마스코트로 20세기 후반 글로벌하게 확산한 아동문화 및 대중문화를 상징한다. 또 베어브릭은 일본 기업에서 15세 이상을 대상으로 만든 곰 모양의 장난감으로 21세기 키덜트 문화를 대표한다. 사람과 동물을 결합하고 애니메이션에 키덜트 상품을 합성한 Bon은 친숙하면서도 어딘지 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Bon은 작가의 분신, 아바타로서 아이 모습의 어른, 어른 속의 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년과 성년의 경험을 모두 표상하며 과거와 현재, 그 추억과 욕망을 매개한다.

 

‘Bon’이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좋은’이라는 뜻의 형용사에서 따온 것이다. 그 의미는 좋은 것, 즐거운 것, 달콤한 것, 편안한 것을 가리킨다. 2023년 개인전 《즐거움의 본질을 보다 - BON, 本, 본》을 계기로 ‘Bon’은 ‘bon/bonne’의 발음을 따라 ‘本’과 ‘본’으로 의미를 넓혔다. ‘本’이라 하면 본질, 근본, 표본, 본보기 등을 암시하며 ‘본’은 본다, 본 것, 보기 등을 나타낸다. 그런데 ‘Bon, 本, 본’ 세 가지는 모두 하나로 연결된다. ‘좋다’, ‘즐겁다’고 느끼는 쾌감의 ‘본질’ 혹은 ‘근본’에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그 욕망은 폭증하는 시각적 정보, 즉 ‘본 것’에 의해 흔히 발동한다. 우리는 매스컴, 인터넷, 광고, 쇼핑몰 등에서 본 것, 그 상품에 쉽게 이끌린다. 시각예술은 종종 사람들의 숨은 욕망을 드러내고 ‘보는’ 즐거움을 제공하며 시각적 소비라는 대리만족을 가능케 한다.

 

Bon은 모습을 바꾸며 이곳저곳에 등장한다. 책꽂이가 놓인 거실 의자에 앉아 있기도 하고 쇼윈도가 유혹하는 길을 걸어가기도 하며 거리에서 킥보드를 타기도 한다. 그 몸에는 하트, 별, 명품 브랜드의 명칭과 로고, 자신의 이름, 이니셜, 낙서 등 다양한 이미지나 문자들이 새겨져 있다. 그것들은 사랑, 행복, 꿈, 소비, 소유, 정체성, 해방 등을 의미하는 파편적인 기호들이다. 그런 욕망의 요소들이 자아를 끊임없이 침범하고 흔들어댄다.

 

때때로 Bon은 기존 팝아트의 익숙한 장면에서 주인공이 된다. <Look, Bon>은 미국 팝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처음으로 디즈니 만화를 차용한 작품 <Look, Mickey>를 다시 차용한 것이다. Bon의 태생이 그렇듯이 대량생산된 이미지들은 우리 마음속에 거침없이 들어와 조금씩 변형, 왜곡, 중첩되며 기억으로 각인된다. 이렇게 대중적 이미지의 영향력이 급증하는데 예술이 여전히 전통적 가치인 고유성이나 유일성을 고수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리히텐슈타인이 통속적 이미지를 과감하게 수용했듯이 이지현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대중문화와 팝아트의 요소들을 당당하게 차용한다.

 

그런데 이지현의 작품은 팝아트와 유사하면서도 큰 차이가 있다. 팝아트 작가들이 대중 인쇄물의 기계적인 제작기법을 드러내 무표정한 대량 복제성을 강조했다면, 이지현은 화면에 여러 겹의 레이어를 쌓아 이미지를 중첩시키고 깊이를 부여함으로써 또 다른 차원을 암시한다. 그 레이어들은 디지털 기술에 의한 복제 시대에 작가와 작품의 고유성과 유일성을 다시 소환하는 그만의 예술적 장치이자 제작방식이며 그 결과물이기도 하다.

 

작업 과정에서 동양 회화의 전통적 재료인 비단과 한지를 사용하고, 첨단 디지털 프린트의 기계적 방식과 함께 한국화의 배채법 등 수작업을 병행한다. 오랜 시간 공들인 무수한 반복 작업으로 명도가 다른 레이어가 만들어진다. 그 속에서 기억과 일상의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베일을 씌운 듯 흐려지며 서로 결합하거나 오버랩된다. 작가는 이질적인 소재들과 기법을 반복하면서 오늘날 한국화가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한다. 동양과 서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에 공존하는 본질적인 것을 탐구하며 글로벌한 작가의 역할을 모색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이지현의 작품은 트렌디하면서도 레트로적이다. 키덜트 문화현상을 반영하는 한편 고유의 캐릭터로 키덜트 문화를 재생산한다. 작품에 하나씩 수집된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며 욕망의 레이어를 덧입고 새로운 아바타로 탄생한다. 그들은 욕망의 작용에 따라 다양하게 변신하지만, 항상 밝고 따뜻한 색채로 물들어 있다. 순수했다고 기억하는 우리의 어린 시절처럼. 그들이 사는 공간은 오래된 것, 지나간 것이 다시 돌아와 유토피아를 이루는 곳, 바로 ‘레트로피아’다. 친숙한 것들이 손짓하는 그 낙원으로 잠시 들어가 놀고 즐기며 꿈꾸고 싶지 아니한가.

Consolation of Childhood Innocence, Restoration of Purity

Kim Sang-cheol | Prof. of Art Criticism, Dongduk Women’s University |

Since a human’s life is anxious and unstable, they always dream of an ideal state or situation. Utopia or Shangri-La, which is often on everyone’s lips, would be one of those examples. With the changes of the times and social situations, human needs and desires for the ideal have been expressed in different aspects. The aspects of modern civilization, which is called the information-oriented age are new situations and shocks that humans have never experienced. Changes in the digital age, which are made at the pinnacle of mechanical civilization, progress very abruptly and routinely.

In the material prosperity indebted to scientific civilization, human beings always face demands for changes through which they are driven to the fierce daily life of infinite competition. In such intense everyday life, modern people often face the fundamental question “What do we live for?” A culture acts on human life and confirms and recovers human values. The psychological state in which one would be adapted to the changes that remind of speed battle and enjoy a more emotional and enjoyable life, breaking from the bridles of daily life driven to intense competition, would be the reality of a rustic utopia modern people who are tired of everyday life commonly dream of.

The artist diagnoses and comments on this situation as follows: “While desires from the past and their objects were fragmentary, we, who are living in the present time, face the exits and objects of more complex desires.

What remains after excluding the values of the needs required for us is the desire. Today, we live, constantly seeking the inessential remainder.” In other words, it is the interpretation, “New desires and customs that are formed and made in different ways as the utopia of society that has been passed down, following traditional values, collides with changing individual values in a vast stream of information, can neither completely be filled nor standardized. We know that human desires cannot consequently be fulfilled forever even if diversity and pluralism in modern society are fused and grafted to traditional values.”

Through such diagnosis and understanding, the artist anticipates the healing of modern people through kidult value and meaning. Kidult is a new word that emerged in the 1980s, which is a compound word of kid meaning a child with adult meaning a grown-up. In other words, it refers to an adult who has child-like emotions or yearns for such behavior even if he or she is a grown-up. This is based on a certain value of the past or playful emotions of grown-ups, which stimulate the sentimentality of the public by missing the past by imitating the value itself. It is characterized by seeking things childishly naive and funny instead of things serious, solemn, and heavy. In this sense, kidult is in the same vein as kitsch attributes and ideology of Pop Art to some extent. Thus, it has the characteristic of being familiar, but unfamiliar.

The artist concretizes her messages through specific characters, Bon, Cookie, and Astroboy. Bon has impressive harmony formed as pastel color tones are delicately overlapping. The artist explains that this represents the emotions of modern people who live busy but lonely and implicitly expresses the psychology of escaping from complex reality. Cookie delivers the message of sweet relaxation and consolation to modern people who are tired of living in a rapidly changing era through cookies in the shape of a cute teddy bear alluded to the social attribute of consumption. Astroboy is a little hero who realizes the traditional value of didactic morality and is a symbol presented as the point of contact between machine civilization and humans.

Most of the artist’s works consist of dual-screen structures. She embodies unique soft and delicate colors through the process, like labor to repeatedly paint pigments on a very delicate and sensitive base of silk. That is the layering of pigment and the accumulation of time. The process of accumulating pigment is made solely by the artist’s will. Time is the process that forms another harmony, reducing it to something random. The dual screen does not simply reveal the structure of the physical screen but also the point of contact where values collide and converge, which the artist would say. It is read as complex and ambivalent settings, such as children and adults, tradition and modernity, and past and present. Especially, if the meaning is extended to digital and analog, or matter and phenomena, the artist’s intention of borrowing the form of kidult and message to modern times and modern people can be understood more specifically.

When modern people would enjoy an emotional and enjoyable life, breaking away from the scene of a fierce life called daily life, it is a natural phenomenon that they would seek emotional stability and release stress through the fantasy of old childhood. In rapidly changing reality, this phenomenon represented by kidult must not be regarded as simple deviance or psychological regression phenomenon, like concentric regression. It is often universalized and already accepted as a social phenomenon in various fields, including film, music, fashion, and art. Kidult not only satisfies the sensibilities of the public through popular culture, but also represents a part of public life as part of the way of human existence living in modern space and time.

The artist says, “The work that expresses sensitivity through analog work in the kidult’s innocent and enjoyable modern play is the starting point to look for slow happiness in fast daily life for me.” This is a peaceful message and comfort for those who are exhausted in their daily lives. It is a pleasant deviation and invitation to a utopia that can finally be found through the restoration of private and blurred childhood innocence hidden in a corner of inner consciousness. The artist gives a metaphor to the property of modern society and the lives of modern people through mass-produced and mass-consumed popular images and presents a small place for breathing or a place for hiding and resting to modern people who live fierce lives in rapidly changing reality. This is the performance of a special social function through art and the representation of a part of the lives of the public as a part of the way of human existence. The artist’s message, “Hopefully, this exhibition will deliver a peaceful message that comforts people’s exhausting day, guides them to a utopia in imagination in repetitive daily life and makes them feel peace in memories through works that express kidult play” summarizes this meaning.

 

​동심의 위로, 순수의 회복

김상철 | 동덕여대 교수. 미술평론 |

인간의 삶은 불안하고 불안정하기에 늘 이상적인 상태나 상황을 꿈꾸게 마련이다. 흔히 회자되는 유토피아나 무릉도원 등은 바로 그러한 예의 하나일 것이다. 시대의 변화와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이상에 대한 인간의 요구와 욕망은 서로 다른 양태로 표출되곤 하였다. 정보화시대로 일컬어지는 현대문명의 양태는 그간 인간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이자 충격이다. 기계문명의 절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변화는 대단히 급격하고 일상적으로 진행된다.

과학 문명에 힘입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인간들은 늘 변화의 요구와 마주하게 되고, 이를 통한 무한경쟁의 치열한 일상에 내몰리게 된다. 이러한 치열한 일상의 삶 속에서 현대인들은 종종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마주하게 된다. 문화라는 것이 인간의 삶에 작용하여 인간적인 가치를 확인하고 회복시켜 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변화에 적응하고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일상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다 감성적이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심리 상태는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공통적으로 꿈꾸는 소박한 이상의 실체일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을 “과거의 욕망과 그 대상이 단편적이었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보다 복잡한 욕망의 출구와 대상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욕구의 가치를 제외한 나머지는 욕망이다. 오늘의 우리는 없어도 되는 나머지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라고 진단하고 해설한다. 즉 “전통적 가치를 이어서 내려오던 사회의 이상향이 수많은 정보의 흐름 속에서 변화되는 개인의 가치관과 충돌하면서 다르게 형성되고 만들어지는 새로운 욕망과 관습은 결국 완전히 채워질 수도 정형화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 가치관에 현대 사회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융합하고 접목하여도 인간의 욕망은 영원히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라는 해설이다.

이러한 진단과 이해를 통해 작가는 키덜트(kidult)적인 가치와 의미를 통해 현대인의 치유를 기대한다. 키덜트는 80년대 등장한 신조어로 아이를 뜻하는 kid와 어른을 뜻하는 adult의 합성어다. 즉 어른이면서 어린아이 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거나 그러한 행동을 동경하는 어른을 의미한다. 이는 과거의 어떤 가치, 또는 그 가치 자체를 모방함으로써 과거를 그리워하고 대중의 심리를 자극하는 성인들의 유희적 감성을 바탕으로 한다. 이의 특징은 진지하고 엄숙하며 무거운 것 대신 유치할 정도로 천진난만하고 재미있는 것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키덜트는 키치적 속성과 팝 아트의 이념과 일정 부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것은 친근하고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이 특징이다.

작가는 본(Bon)과 쿠키(Cookie), 그리고 아톰(Atom)이라는 특정한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구체화한다. Bon은 파스텔톤의 색조가 섬세하게 중첩되며 이루어내는 조화가 인상적이다. 작가는 이를 바쁘게 살아가지만 외로운 현대인의 감정을 대변하는 동시에 복잡한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심리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설한다. Cookie는 소비라는 사회적 속성에 빗대어 귀여운 곰돌이 모양의 쿠키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며 지쳐있는 현대인들에게 달콤한 휴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Atom은 권선징악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구현하는 작은 영웅인 동시에 기계문명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접점으로 제시되고 있는 상징이기도 하다.

작가의 작업들은 대부분 이중적인 화면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비단이라는 매우 섬세하고 민감한 바탕에 안료를 반복하여 칠하는 노동과 같은 과정을 통해 특유의 은은하면서도 섬세한 색채를 구현해 낸다. 그것은 안료의 쌓음인 동시에 시간의 축적이기도 하다. 안료를 쌓아가는 과정은 전적으로 작가의 의지를 통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시간은 이를 무작위적인 것으로 환원하며 또 다른 조화를 이루어내는 과정이다. 이중적인 화면은 단순히 물리적인 화면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가치가 충돌하고 융합하는 접점이라 여겨진다. 아이와 어른,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 등의 복합적이고 중의적인 설정으로 읽힌다. 특히 디지털과 아날로그, 물질과 현상 등으로 그 의미를 확장해 본다면 작가가 굳이 키덜트라는 형식을 차용하고 이를 통해 현대와 현대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들이 일상이라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벗어나 감성적이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고자 할 때 옛 어린 시절의 환상을 통해 정서적 안정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키덜트로 대변되는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일탈이나 동심 회귀와 같은 심리적 퇴행 현상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이미 미술을 비롯한 영화와 음악, 패션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보편화 되어 수용되고 있다. 키덜트는 대중문화를 통해 대중들의 감성을 충족시켜 줄 뿐 아니라 현대라는 시공을 살아가는 인간 존재 방식의 한 부분으로서의 대중의 삶 한 부분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키덜트의 천진난만하고 재미있는 현대적 유희에 오랜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아내는 작업은 나에게는 빠른 일상에서 느린 행복을 찾는 시작점이다.”라는 작가의 말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전하는 안온한 메시지이자 위로이다. 그것은 유쾌한 일탈이자 내면의 의식 한 구석에 감춰져 있을 은밀하고 흐릿한 동심의 회복을 통해 비로소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이상향에 대한 초대이다. 작가는 대량생산되고 소비되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통해 현대라는 사회의 속성과 현대인의 삶을 은유하며, 이를 통해 급변하는 현실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은밀한 작은 숨 쉴 곳, 혹은 숨고 쉴 곳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미술을 통한 특수한 사회적 기능의 수행일 뿐 아니라 인간 존재 방식의 한 부분으로서의 대중의 삶 한 부분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키덜트적 유희를 담은 작품을 통해서 일상에서 지친 하루를 달래고, 반복적인 일상에서 상상 속의 유토피아로 안내하며 추억 속에서 평안함을 느끼게 하는 평온한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소망한다.”라는 작가의 말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개괄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Artist Statement

My work begins with exploring and healing the essential desires of man.

A human desire that has continued across time and space has changed, reflecting the phases of the times, but the commonality has always been redundant.

While desires from the past and their objects were fragmentary, we, who are living in the present time, face the exits and objects of more complex desires. What remains after excluding the values of the needs required for us is the desire. Today, we live, constantly seeking inessential remainder.

New desires and customs that are formed and made in different ways as the utopia of society that has been passed down, following traditional values, collides with changing individual values in a vast stream of information, can neither be filled completely nor standardized. We know that human desires cannot consequently be fulfilled forever even if diversity and pluralism in modern society are fused and grafted to traditional values.

 

I anticipate the healing of modern people through child-like play.

 

In modern times, a variety of information is infinitely spread with the development of science and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Another change comes even before we become adapted to it after something new is produced. In the fierce competition in which we lost the reality and goal as an untact situation becomes routinized and digitized quickly, we get exhausted and fall into lethargy. Sometimes, for us, the memories of the past and a utopian ideal instead of reality make us feel peaceful.

 

Characters revealed in my work are the subject matters that make people forget reality, instead of the objects of general desire imposed by society. They are expressed with innocent imagination and childhood innocence, not adulthood as the motifs. The subject matters that serve as a new culture of entertainment and healing for modern people deliver the social phenomenon of kidultism at the same time. Kidult is a compound word of kid meaning a child with adult meaning a grown-up, which refers to an adult who has child-like emotions or yearns for such behavior even if he or she is a grown-up.

As for the characteristics of the kidult culture, it focuses on something funny and childish rather than something serious and heavy and is, essentially, for human play. Play is a need to a child-like innocent childhood.

Kidult play refers to feeling the cathartic joy that brings us liberation and freedom to our exhausted and withered emotions if we return to the memories of childhood and fall into a world of fairy tales and fantasies even for a while. This experience makes us feel a sense of freedom, breaking from the pressure of reality, and makes us break away from the pressure of age or status, in the end, to realize that we are free human beings who play.

 

Subject matters of desire beyond time and space, characters looking forward to hope, and modern light subject matters are juxtaposed, which induce us to take out the memories of childhood innocence that is on the other side of desire.

 

We sometimes find stability in utopia in our imagination and familiar memories of the past, breaking from the reality to which we cannot be adjusted.

Hopefully, for us who have grown up before we know, characters in the work will be the beings who guide us to an imaginary utopia where there are always happiness and pleasure.

 

My work needs numerous overlaps of time of repetitively putting colors on silk, waiting, and putting them again. Like human memory consists of several pages that record the life process, blurred memories of childhood innocence and amusing desires of modern people are visually expressed through the process of recording and overlapping materials for desire and healing. In addition, it is completed by the convergence of analog work and modern digital work based on traditional coloring.

In the present, we always encounter something new fast, and the past is blurry, slow, and relaxed. We know well that serenity and happiness achieved in rapidly changing reality do not last that long. Therefore, we sometimes realize that finding these feelings in imagination or childhood innocence is more realistic.

 

The work that expresses sensitivity through analog work in the kidult’s innocent and enjoyable modern play is the starting point to look for slow happiness in fast daily life for me. I hope that a calm message will be delivered to everyone, comforting his or her exhausting day and leading him or her to an imaginary utopia.

작가 노트

내 작업은 인간의 본질적 욕망에 대한 탐구와 치유에서부터 시작된다.

 

시공간을 넘으며 이어온 인간의 욕망은 그 시대상을 반영하며 변화해 왔지만, 그 공통점은 언제나 잉여적인 것이다.

 

과거의 욕망과 그 대상이 단편적이었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보다 복잡한 욕망의 출구와 대상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욕구의 가치를 제외한 나머지는 욕망이다. 오늘의 우리는 없어도 되는 나머지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전통적 가치를 이어서 내려오던 사회의 이상향이 수많은 정보의 흐름 속에서 변화되는 개인의 가치관과 충돌하면서 다르게 형성되고 만들어지는 새로운 욕망과 관습은 완전히 채워질 수도 정형화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 가치관에 현대 사회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융합하고 접목하여도 결국 인간의 욕망은 영원히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키덜트적 유희를 통한 현대인의 치유를 기대한다.

 

현대는 과학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다양한 정보가 무한 전파된다. 새로운 무언가가 생산되고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또 다른 변화가 다가온다.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빠르게 디지털화되어가는 현실과 목표를 잃어버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리는 지치게 되고,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다. 때로는 이런 우리에게 현실이 아닌 과거의 추억과 유토피아적 이상향이 우리의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내 작품에 드러나는 캐릭터들은 사회가 강요하는 일반적 욕망의 대상이 아닌 현실을 잠시 잊게 하는 소재이다. 이는 어른다움이 아닌 천진난만한 상상력과 동심을 모티브로 하여 표현된다.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유희의 문화이자 치유의 역할을 하는 소재들은 동시에 키덜티즘의 사회적 현상을 전달한다. Kidult(키덜트)는 아이를 뜻하는 kid(키드)와 어른을 뜻하는 Adult(어덜트)의 합성어로 어른이면서 어린아이 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거나 그러한 행동을 동경하는 성인들을 의미한다. 키덜트 문화의 특징은 진지하고 무거운 것보다 재미있고 유치한 것에 중점을 두며, 본질적으로 인간의 유희를 위한 것임에 있다. 유희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한 시기로 돌아가려는 욕구이다. 키덜트적 유희란 어린 시절의 기억 속으로 돌아가 동화나 환상의 세계에 잠시나마 빠지면 고갈되고 메마른 정서에 해방과 자유를 가져다주는 카타르시스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현실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나이나 지위에 대한 중압감에서 벗어나게 하여 자유로운 인간, 유희하는 인간임을 자각하게 해준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욕망의 소재들과 희망을 기대하는 캐릭터 및 현대의 경쾌한 소재들이 병치 되며 이는 욕망의 이면에 있는 동심의 기억들을 꺼내도록 유도된다.

우리는 적응하지 못하는 현실을 벗어나 가끔은 상상 속의 유토피아와 친숙한 과거의 기억 속에서 안정을 찾곤 한다. 어느덧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작품 속 캐릭터는 언제나 행복하고 즐거움이 있는 그러한 상상 속의 유토피아로 인도하는 존재가 되기를 기대한다.

 

내 작업은 비단 위에 색을 반복하여 올리고 기다리며 다시 올리는 수많은 시간의 중첩이 필요하다. 인간의 추억이 살아온 과정을 기록한 여러 페이지로 이루어진 것처럼, 욕망과 치유의 소재들을 기록하고 중첩시키는 과정을 통해 흐릿한 동심의 기억과 현대인의 유희적 욕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전통채색을 바탕으로 한 아날로그적 작업과 현대적인 디지털작업의 융합으로 완성된다.

현대는 언제나 빠른 속도로 새로운 것을 마주하게 되고 과거는 흐릿하고 느리며 여유롭다.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서 이루는 평온함과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을 상상 속에서 또는 동심에서 찾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키덜트의 천진난만하고 즐거운 현대적 유희에 아날로그적 작업을 통해 감성을 담아내는 작업은 나에게는 빠른 일상에서 느린 행복을 찾는 시작점이다.

모두에게 지친 하루를 달래고 상상 속의 유토피아로 안내하는 평온한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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